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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합시다.조선왕조의 족보

pri4iqq 2021. 4. 8. 14:21

오늘은 조선왕조의 계보 순서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.아마 중학교, 고등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외우거나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태정태세 문단세, 예성년 중, 인명선, 광인, 효현숙, 연정순, 홍철, 고승!

우리나라에는 모두 27개의 조선왕이 있는데, 각 왕이 행적과 사고를 차례로 살펴봅시다.

타이세이 타이세 문단세

태조 - 고려 말 무신들의 왜구를 물리치고 공을 세웠습니다. 위화도 회군을 동원해 고려를 멸망시켰고, 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했습니다.

정종 -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켰습니다. 즉위한 지 2년 후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됩니다.

태종 - 정문주를 높였습니다.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는 데 기여하여 왕자들의 왕귀 다툼에 이겨 왕위를 빼앗깁니다. 호폐법을 시행하고 다양한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초를 닦았습니다.

세종 - 태종의 셋째 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측우기, 해시계 등의 과학 기구를 만들었습니다. 그리고 북쪽에 4군과 육전, 남쪽에 삼포를 둠으로써 외지에도 힘을 쏟았습니다.

문종 - 학문에 밝고 인품이 좋았습니다. 세종의 뒤를 이어 유교적 이상정치를 펴면서 문화가 발달했습니다.

단종은 12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. 그러나 계유사화로 수양대군에게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고 숙종 때 왕위에 오르면서 단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.

세조-김종서를죽였습니다.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, 국조보감, 경국대전 등을 편찬하고 관제를 개혁함으로써 관목할 만한 공을 세웠습니다.

예성 인간의 명셍

예종-세조의 차남으로, 세조 때부터 시작된 경국대전을 완성시켰습니다.

성종-학문을 좋아해서 타카히로 억 불, 인재 등용 등 조선 초기의 문물 제도를 완성시키고 『 경국대전 』을 펴냈습니다.

연산군-성종의 장남으로 생모 윤 씨 폐비에 찬성한 사람을 모두 죽였습니다. 폭군에 의한 우 오사 합이라고 갑자기 죽음화를 일으키고 많은 세조를 배신한 서비을 죽이고 중종 반정으로 폐위가 되었습니다.

중종-혁신 정치를 했습니다만, 훈구파의 원한에 의해서 실패하고 1519년에는 기묘화, 신사화를 가져왔습니다.

인종-나가요 시 왕후의 조성, 기묘화로 쇠퇴한 현량파를 부활시켰습니다.

명종-중종의 차남으로 12세에 즉위하고 을사 일화, 정 미사화, 즉 사화, 을사 왜란을 겪었습니다.

선조-명종이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승하하면서 16세로 즉위했습니다. 이이(이·가), 이황(이·황 등의 인재 등용을 하고 선정에 힘을 쏟았습니다만, 분로쿠·임진왜란과 당쟁의 시련을 받았습니다.

광인효 현숙경영

광해군 - 당파싸움으로 영창대군, 임해군을 모반죄로 다스리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수많은 폐해를 저지르며 서적 편찬 등 내치에 힘썼으며 후금과 명나라에 대한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.

인조-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데 이괄의 난, 병자호란, 정묘호란을 겪었습니다.

효종 - 인조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으로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8년간 갇혀 있다가 즉위 후 설욕하기 위해 국력을 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.

현종 즉위 초부터 남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으로 많은 유신이 희생되었습니다. 또 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여 종철 활자 10만여 자를 주조하였습니다.

숙종 - 서인, 남인의 당파싸움과 장희빈으로 인해 내환이 잦아졌습니다.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상건통보 주조,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확장하였습니다.

경종 -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이 되살아나 신임 사화 등 당쟁의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.

영조 - 탕평책을 이용하여 당쟁을 제거하는 데 힘써 균역법 시행, 신문고 부활, 동국문헌비고 발간 등 부흥응의 토대를 마련하였고, 만년에는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.

정승호 철 고승

정조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하고, 서적을 보관·간행하기 위한 규장각을 대리하였습니다. 임진자, 정유자 등 새로운 활자를 만들어 실학을 발전시키는 등 문화의 황금기를 거쳤다.

순조-김조순 등 안동 김시의 세도정치시대에 신유사옥을 비롯한 세 차례의 천주교 대탄압이 있었고, 홍경래의 난이 있었습니다.

헌종 - 8세에 즉위하면서 왕 5년에 천주교 탄압 기해사옥이 일어났습니다.

청종 -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비 순원황후의 명으로 즉위하였습니다. 왕 2년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진주민란 등의 혼란이 잦았습니다.

고종-매우 대원군의 차남으로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세력 다툼, 열강의 문호 개방 압력에 시달렸습니다. 헤이그 특사 거릉에서 퇴위하여 임오군란을 일으켰습니다.

순종-고종의 두 아들로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35년간 치욕의 일본 통치 시절을 보내고 이 왕이라고 불렀죠.